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2017. 10. 19. 10:14 ━━━━━•건강생활/등산관광여행


    광주의 현대화는 어디에서 시작 되었을까? 100년전 일제강점기때 외국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들어와서 선교를 목적으로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워 선교와 교육과 치료를 시작한곳이 광주 양림동 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광주의 현대화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일찍부터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내가 되었고 노인들이 나이를 먹다보니 힘이 빠지고 걸어가면 뒷뚱거리는 모습이 펭퀸을 닮았다해서 지어진 이름이 지금의 양림동 펭퀸마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광주 양림동에는 펭귄마을과 역사문화마을이 공존해 있습니다 이 마을 앞에는 광주 중심가를 가로 지르는 광주천이 흐르고 있고 바로 옆에는 사직공원이 있고 그 옆에는 광주공원이 있습니다

    펭퀸마을에 진열되고 전시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세월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를 키우면서 사용했던 폐품같은 일용품들이 대부분입니다. 펭긴마을이 시작되면서 집집마다에 방치되어 있던것들을 들고나와 한데 뫃아 놓았더니 모두가 작품이 되었습니다 버려진 물건들이 새롭게 새 생명을 얻게 되었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된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쁜 틈을 내서 이곳에 오면 우리들 어머니가 쓰다가 버린 물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버려지거나 쓸 수 없는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서 지나가버린 세월의 시간에 머물러 끝이나 있었는데 그 멈춘 시간속에서 우리를 뒤돌아 보며 현대인들의 일상과 전혀 다른 차분함과 천천히 지나가는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멈춰있는 시계바늘처럼, 진짜 시간이 멈춘듯한 펭귄마을은 우리들의 편안한 쉼터 입니다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조아라 여사는 광주 수피아여고 재학 시절, 광주 독립 학생 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고, 졸업 후에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감옥살이를 되풀이하며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여성 운동가입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던 광주 YWCA 재건에 주도적으로 나서 기독교 여성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5·18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수습대책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에 내란 음모죄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6개월 간 옥고를 치뤘습니다

    조아라 여사는 청소년 야학인 ‘별빛학원’과 윤락여성들의 직업 훈련을 위한 ‘계명여사’를 열어 35년간 빈민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돕는 등 ‘가난한 자·억압받는 자·소외당한 자’의 대변자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했습니다.

    * 오월어머니집 May Mothers House * 이곳(오월어머니집)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갖은 고초 속에서도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민주어머니들의 쉼터로 2006년 5월 8일 문을 열었으며 특히 1980년 5월, 사랑하는 가족이 희생되었거나, 또는 스스로 서슬 퍼런 군부 독재에 아랑곳없이 민주화 투쟁 대열에 앞장섰던 여성(어머니)들이 마음속에 묻은 고통을 치유하고,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이곳에 모여 안부를 묻고 서로 보살피는 장소이자, 오월정신을 계승해 나가는 공간이라 합니다

    나병(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한 선교사, 우일선 선교사사택 우일선 선교사사택은 192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광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가옥인데 이 건물로 인해 사람들이 양림동을 ‘서양촌’이라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일선 선교사의 본래 이름은 윌슨(R. M. Wilson, 1880~1963)이다. 그는 1908년 놀란(J. W. Nolan) 선교사가 설립한 광주제중원(현 광주기 독병원)의 제 2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1948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꼬박 40년 동안 광주, 전남지역의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의료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평생을 나병(한센병) 퇴치에 심혈을 기울이며 우리나라 한센병 치료와 선교에 이바지한 고마운 인물입니다

    옛날 광주의 부자동내 양림동에 있는 이장우 가옥 19세기말 주택입니다 대문간, 곡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배치된 상류주택 양식의 기와집이며 이 중 안채가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장우가옥 안채의 상량문에 “광무 3년 을해 2월…(光武三年乙亥二月…)”이라고 기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99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고. 이 건물들 중에서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 당시의 소유자는 정병호(그의 부친은 정낙규)인데 1965년 현 소유자 이장우가 사들였다고 합니다

    이 전통가옥은 최승효 가옥으로 광주광역시 지정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집은 1921년 독립운동가 최상현 선생이 건립했고 독립운동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1968년 MBC 창립자 최승효씨가 인수해 살다가 1999년 최씨가 작고한 후 방치 되다시피하다 3년전 최승효씨의 3남인 최인준씨가 관리하며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뒷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광주 사직공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이 공원이 되기전에 원래사직공원의 터는 사직단이 있던 곳인데 사직단이란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이 장소는 조선 태조 3년에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사직공원의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광주 시가지를 사방으로 둘러 볼 수 있습니다